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부재로 친척 집에서 사촌들과 자랐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저희를 보며 "부모 없는 자식들이라 억척스럽다"거나 "끼리끼리 모여 기구하다"는 식의 편견 어린 시선을 보냈죠. 그때마다 저희는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주며, 우리가 피로 맺어진 것보다 더 단단한 '시간'으로 엮여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썼습니다. 드라마 '조립식 가족'을 보며 주원, 해준, 사나 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우리만의 가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제 어린 시절과 겹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혈연이 아닌 시간이 만든 가족
일반적으로 가족은 혈연으로 정의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가족을 만드는 건 '함께한 시간'입니다. 드라마 속 정제, 서연, 해준 세 사람은 각자의 아픔을 안고 한 건물에 모여 살게 됩니다. 10년 전 주원의 아빠 정제는 칼국수집을 운영하며 딸 하나만을 보물처럼 키우던 평범한 아버지였죠. 같은 건물 3층에 이사 온 사나의 가족은 딸을 잃은 상처로 서로를 탓하며 무너져 있었고, 해준은 엄마가 서울로 떠나며 이모에게 맡겨진 아이였습니다.
처음엔 서먹했던 세 가족이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나 엄마는 결국 집을 떠났고, 해준 엄마도 기약 없이 서울로 가버렸습니다. 남겨진 건 두 아빠와 세 아이뿐이었죠. 솔직히 이런 구성이 과연 제대로 된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싶었는데, 드라마는 이들이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매일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며, 때로는 격렬하게 싸우면서도 결국 서로를 지켜주는 관계로 성장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사촌들과 함께 자라며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이 장면들이 더욱 와닿았습니다. 가족은 단순히 생물학적 결합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이해하고 기꺼이 자신의 온기를 나누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점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주원이 성씨 통일에 집착하는 모습도 이해가 됩니다.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경쟁자로 오해받거나, 남매가 아니라고 의심받는 시선이 얼마나 불편한지 저도 알거든요.
편견을 깨는 아이들의 단단함
일반적으로 가정환경이 온전하지 않으면 아이의 성격도 문제일 것이라는 편견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완전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드라마 속 세 아이는 각자 다른 형태의 결핍을 안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비뚤어지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로 성장합니다. 주원은 학교에서 '미친놈' 이미지를 만들어 자신과 동생들을 지키는 전략을 선택했고, 사냐는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해준은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을 배려하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주원이 일진들에게 맞서는 장면입니다. 동생을 건드린 아이들에게 "침도 못 뱉게" 만들고, "또라이가 아니라 상미 친 놈"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키는 모습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절박함이 느껴졌죠. 제가 어렸을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동네에서 저희를 놀리는 아이들이 있었고, 저는 사촌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더 강하게 행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환경의 결핍이 아이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우고 자신을 지킬 줄 아는 단단함을 선물할 수 있다는 점을 드라마는 잘 보여줍니다.
남자 친구 후보가 주원에게 "엄마 없는 애 치고 밝다"는 식의 편견을 드러냈을 때, 주원은 단호하게 반박합니다. "엄마 없는 애 치고 까진 얘기 안 했어. 어려운 가정환경이다 그것까지만 얘기했어." 이 대사가 제게는 특히 와닿았습니다.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규정짓고, 그 틀 안에서만 이해하려 하죠. 하지만 드라마는 이런 편견을 정면으로 깨부수며, 가정환경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진짜 가족의 의미를 묻다
드라마 속에서 가장 큰 갈등은 친부모들이 뒤늦게 나타나면서 시작됩니다. 해준의 친부는 19년간 연락 한 통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 "내 핏줄이니까"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심지어 돈으로 해준을 사려는 뻔뻔함까지 보이죠. 사나의 엄마는 딸을 버리고 떠났으면서 "용서하려고" 돌아왔다며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합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좀 불편했습니다. 드라마적 갈등을 위한 장치겠지만,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부모들의 행태가 너무 반복적으로 묘사되어 극의 전개상 피로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제와 서연, 그리고 아이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인상적입니다. 정제는 해준에게 "아빠는 안 갔으면 좋겠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면서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라며 아이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해준 역시 "무서워서 말 안 하라겠어요. 원래도 엄마 볼 때만 데고 있으잖아요"라며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죠. 이 장면에서 저는 울컥했습니다. 제가 사촌들과 함께 살 때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거든요. 친척 어른들이 "진짜 부모 찾아가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할 때마다, 저희는 서로를 붙잡으며 "우리가 진짜 가족"이라고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드라마는 혈연 중심의 가족주의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조립식 가족'의 존재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보여줍니다.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경쟁자로 오해받거나, 부모의 부재를 '기구한 운명'으로 낙인찍는 타인의 시선은 폭력적입니다. 각자의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를 지키려는 주인공들의 태도는 가족의 의미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사이'로 재정의하며, 진정한 의미의 연대란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상처를 딛고 성장하는 과정
드라마의 후반부로 갈수록 세 아이 사이에도 갈등이 생깁니다. 사나는 엄마와의 만남 이후 마음이 흔들리고, 해준은 그런 사나를 보며 "엄마랑 잘 사는 애들 널렸는데 왜 자꾸 나한테"라며 상처를 받습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두 아이 모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냐는 엄마를 완전히 거부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의 존재가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하고, 해준은 자신의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사나에게 화풀이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사촌 동생이 친부모를 만나고 온 날, 저는 왠지 모를 불안감과 질투심을 느꼈거든요. "저 애는 부모를 만날 수 있는데 나는 왜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생에게 퉁명스럽게 대했던 기억이 납니다. 드라마는 이런 복잡한 감정을 솔직하게 그려내며, 가족이라고 해서 항상 화목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결국 다시 손을 잡고 일어서는 과정이 진짜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요.
사나 엄마가 "너 계속 모른 척할래? 너랑 소정이 둘 뿐이었잖아"라며 사나의 트라우마를 건드릴 때, 주원과 해준은 사나를 지키기 위해 나섭니다. "엄마로부터 떨어졌던 과거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서로가 서로의 방패가 되어주는 모습에서 진정한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가족은 항상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서로에게 실망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손을 내밀고,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관계야말로 진짜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조립식가족'은 혈연이 전부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합니다. 성씨가 같지 않아도, 부모가 없어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죠. 저 역시 사촌들과 함께 자라며 이 사실을 깨달았고, 지금도 그들과의 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만약 가족의 형태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드라마를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가족은 형태가 아니라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