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개봉한 영화 '일급기밀'은 현재진행형인 방산 비리를 정면으로 다룬 국내 최초의 사회 고발 영화입니다. 홍기선 감독은 실제 내부고발 사건들을 모티브로, 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자행되는 부정부패와 이에 맞서는 한 군인의 양심을 그려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조직 내 부조리와 공익 제보자가 겪는 고뇌를 사실적으로 담아낸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방산 비리의 실체와 에어스타 사건
영화 속 박대위는 국방부 항공부품 구매과 과장으로 발령받으며 서울 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임 첫날부터 "판공비"라는 이름의 부정 계좌를 받게 되고, 이것이 관행이라는 동료들의 말에 당혹감을 느낍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에어스타라는 항공기 부품 공급업체가 품질 검사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조사 결과 75센트짜리 부품이 315달러로, 525달러짜리가 10만 800달러로 납품되는 등 몇십 배의 가격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300개만 뽑았는데도 엄청난 금액 차이가 발생했고, 이러한 불량 부품들이 실제 전투기에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박대위가 파악한 차명 계좌는 강호석 장군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자녀 명의로 되어 있었고, 에어스타 지사와의 골프 로비까지 확인됩니다.
이는 단순한 영화적 과장이 아닙니다. 현실에서도 방산 비리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국방력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곤 합니다. 파일럿들의 목숨과 직결된 부품에서조차 비리가 발생한다는 점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얼마나 깊숙이 뿌리내려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영화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한배에서 나온 놈들"이라는 표현으로 압축하며, 조직 내부의 카르텔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내부 고발자의 고독한 싸움과 조직의 압박
강영우 대위의 전투기 추락 사건은 영화의 전환점입니다. 합동 사단 회의에서 박대위는 진실 규명보다 조종사 과실로 사건을 덮으려는 상부의 태도에 충격을 받습니다. "조종사 과실 쪽이 어때"라는 시나리오 조작 제안, 미리 손본 인사 기록 등 치밀하게 준비된 은폐 작업을 목격하며, 박대위는 자신이 "식구"라고 믿었던 조직의 본질을 깨닫게 됩니다.
강호석 장군의 "너 우리 식구 맞지"라는 압박과 "박대기 네가 처음이라고 생각하나"는 위협은 내부 고발자가 직면하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승진 대상자에서 제외되고, 가족까지 위협받으며, 결국 조직에서 내쳐지는 과정은 너무나도 가혹했습니다. "나하고 시현이가 왜 당신 때문에 이런 꼴을 당해야 되는 건데"라는 아내의 절규는 공익 제보자가 겪는 외로움과 고통을 압축적으로 담아냅니다.
영화는 "배신자에 대한 피의 응징"이라는 마피아 논리로 작동하는 조직의 폭력성을 드러냅니다. 방송국 내부에까지 침투한 그들의 네트워크, 언론 장악을 통한 여론 조작, 군 검찰마저 통제하는 권력 구조는 개인이 맞서기에는 너무나 거대합니다. 하지만 박대위는 "저는 엄격한 군율을 지키는 군인이지만 그보다 앞서 법과 양심을 지켜야 하는 대한민국 시민입니다"라는 신념으로 끝까지 싸웁니다. 이는 단순히 교과서적인 대사가 아니라, 조직의 논리보다 양심을 우선시하는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양심의 선택과 진실 폭로의 의미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정숙 기자와의 협력을 통한 진실 폭로입니다. 박대위는 에어스타 지사장 비서로부터 받은 로비 리스트를 활용해 치밀한 작전을 세웁니다. 정복 차림으로 방송국에 홀로 등장해 천장군 일당의 방심을 유도하고, 그들이 자신의 가방에서 기밀자료를 빼내는 순간 "에어스타도 같은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합니다. 이는 단순한 물증 확보를 넘어, 그들이 같은 문서를 공유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
"군인은 전투하다 죽어야 합니다"라는 대사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강영우 대위는 불량 부품 때문에 사망했고, 그의 죽음마저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이용당했습니다. 박대위의 선택은 전우의 억울한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군인으로서의 긍지이자,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막으려는 양심의 발현입니다. 부정과 부패가 약속한 달콤함 대신 양심과 긍지를 선택한 그의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부조리에 대한 경고입니다.
다만 영화는 훌륭한 소재에 비해 표현 방식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소 교과서적인 연출과 인물 간 갈등의 단순화는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방산 비리라는 민감한 소재를 정면으로 다룬 용기와 내부 고발의 위험성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일급기밀은 양심과 진실이 왜 중요한지를 묻는 의미 있는 사회 고발극입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조직의 이익과 개인의 양심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는 부정부패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홍기선 감독의 이 작품은 그 답을 관객에게 묻습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Pns7fTgpg1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