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브랜딩인 성수동》을 처음 틀었을 때 5분 만에 끌까 고민했습니다. 주인공 강나원이 너무 불편했거든요. 택시에서 돈으로 시간을 사고, 동물 실험 사실을 묻어버리려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이 주인공이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니, 이 드라마가 왜 영혼 체인지라는 황당한 설정을 택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마케팅 팀장과 인턴의 몸이 바뀌면서 서로가 살아온 세계를 직접 경험하게 만드는 이 구조는, 브랜딩이란 무엇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였습니다.

영혼이 바뀌면 브랜딩 철학도 바뀔까요?
드라마 초반 나원이 던진 "브랜딩은 강점은 보여주고 단점을 덮는 거"라는 대사가 있습니다. 여기서 '브랜딩(Branding)'이란 제품이나 서비스에 특정한 이미지와 가치를 입혀 소비자의 인식 속에 자리 잡게 하는 마케팅 전략을 의미합니다. 나원은 이를 철저히 결과 중심으로 접근했죠. 팝업 스토어 부지 확보를 위해 공장 사장의 아픈 가족 이야기를 협상 카드로 쓰고, 인턴 은호가 양심적인 문제를 제기하면 "마케팅을 하고 싶으면 착하게 하지 마"라고 일축합니다.
제가 과거 조직에서 프로젝트를 이끌 때도 비슷한 방식을 택했던 적이 있습니다. 경쟁사의 약점을 파고들고, 팀원들의 개인 사정보다 결과물의 완성도만 따졌죠. 그때는 그게 일을 잘하는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나원처럼 성과 뒤에 남은 건 공허함뿐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나원이 5년간 바닥부터 올라왔고,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비로소 이 캐릭터가 왜 이렇게 됐는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영혼 체인지 이후 은호가 나원의 몸으로 팀원들에게 친근하게 대하고, 5천 원짜리 무한리필 식당을 제안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상태를 공유하는 장면들은 나원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들입니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언더독 팀을 결집시키고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저 역시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후배와 협업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효율적이지만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제 방식에 반기를 들었고, 결국 그의 방식대로 진행한 작은 프로젝트가 예상 밖의 큰 울림을 만들어냈습니다(출처: 한국마케팅학회).
언더독 팀이 보여준 진짜 브랜딩은 무엇일까요?
성수 에이전시의 계급 구조는 노골적입니다. 나원의 1팀이 다이아, 그 아래 플래티나, 그리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언더독 팀. 여기서 '언더독(Underdog)'이란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거나 주목받지 못하는 약자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드라마 속 언더독 팀에는 15년 차 선임부터 드래그퀸 공연을 하는 렉스, 눈치 없이 솔직한 영예, SNS 인플루언서 제니까지 회사에서 낙오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나원의 몸에 들어간 은호가 이들의 팀장으로 들어오면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렉스에게 정체성을 숨기지 말고 오히려 "프레임을 바꿔보자"라고 제안해 수제화 공장 브랜딩에 활용하는 장면, 제니의 학교 인맥으로 세계 소주 리브랜딩의 실마리를 찾는 장면, 영예의 인맥으로 임대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까지, 이 팀의 에피소드들은 드라마에서 가장 따뜻한 부분입니다.
무알코올 소주 라인 '무드' 기획 발표는 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세대를 의미합니다. 드라마는 이들의 술 소비량 감소 트렌드를 역으로 활용해 "술을 안 마셔도 분위기에 취할 수 있다"는 콘셉트로 무알코올 시장을 공략합니다. 고등학생들이 등장하는 발표 영상에 모두가 당황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술"이라는 메시지로 이어지는 반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감동받은 이유는 단순히 아이디어가 기발해서가 아닙니다. 은호가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것, 즉 마케팅도 착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실현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과거에 외면해 온 팀원들의 감정과 현장의 진심이 얼마나 큰 마케팅적 동력이 되는지를 몸소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대성장 모텔이 던진 질문, 바꾸지 않는 것도 브랜딩일까요?
대성장 모텔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불륜의 성지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고 실제로 불법적인 일도 서슴지 않던 이곳을, 언더독 팀은 단점을 덮는 대신 50년 넘게 쌓여온 시간과 이야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브랜딩 합니다. 여기서 '로컬라이징(Localizing)'이란 특정 지역의 문화, 역사, 정서를 마케팅에 반영하여 진정성 있는 브랜드 스토리를 만드는 전략을 뜻합니다.
모텔 사장이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 지키겠다는 의미"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 브랜딩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닿은 순간입니다. 나원의 초반 철학대로라면 이 모텔의 부정적 이미지는 당연히 덮어야 할 단점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은호는 그 단점 속에서도 지켜야 할 가치를 발견했고, 그게 오히려 더 강력한 브랜딩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제가 과거 파트너사의 약점을 이용해 협상했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그게 전략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렇게 쌓아 올린 성과 뒤에는 신뢰의 붕괴만 남았습니다. 진짜 브랜딩은 타인을 속이는 기술이 아니라 나 자신과 타인에게 정직해지는 과정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대성장 모텔을 통해 정확히 보여줍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빌런들과 녹음 파일 한 개로 끝나는 반전, 이건 좀 아쉽지 않나요?
드라마의 빌런 구도는 단층적이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도유미가 나원을 죽이려 했던 직접 가해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원을 향한 동경과 질투가 뒤섞인 집착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빌런(Villain)'이란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과 대립하는 악역을 의미하는데, 이 드라마는 빌런을 단순히 악한 존재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유미를 조종해 나원을 파멸시키려 했던 건 희정 대표였고, 정우는 그 사주를 받아 움직였습니다.
희정 대표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입니다. 5년 전부터 나원을 이용해 자신의 위기를 넘기고, 나원이 위험해지자 오히려 더 깊이 끌어들이며, 결국 나원을 죽이려는 사주까지 냅니다. "강나원이 죽어버렸어야 되는데"라는 녹음 파일의 한 문장이 그 모든 위선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방식은 드라마의 최고 반전 장면이었습니다.
다만 이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세밀한 브랜딩 전략을 짜던 드라마가 빌런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증거를 '녹음 파일' 하나로 정리하는 방식은 다소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혼 체인지라는 판타지적 요소와 현실적인 마케팅 디테일이 균형을 이루던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는 전형적인 복수극의 문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나원과 은호의 로맨스가 설득력 있는 이유는, 서로의 몸으로 살아가면서 상대가 얼마나 다른 세계를 살아왔는지를 이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 힘들다. 나 아프다. 이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워요?"라는 은호의 대사는 나원이 혼자 모든 걸 감당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고독이 얼마나 큰지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본 사람이 건네는 말입니다.
《브랜딩인 성수동》은 황당한 설정 위에 브랜딩의 본질, 일의 윤리, 조직 내 약자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쌓아 올린 드라마입니다. 가볍게 보기에도 재미있고,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마케팅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고, 조직 생활에서 억울함을 느껴본 분이라면 언더독 팀의 이야기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영혼까지 팔 수 있어"라던 나원의 대사가 얼마나 공허한지를, 그리고 진짜 브랜딩은 자신의 진심을 되찾는 과정임을 이 드라마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웨이브와 왓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