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 TV와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당신의 맛'이 10부작 중 8화 만에 시청 포기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강하늘, 고민시, 유연석이라는 화려한 캐스팅과 요리라는 매력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뻔한 전개와 캐릭터 고착화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저 역시 '흑백요리사' 열풍 이후 요리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청을 시작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느껴지는 기시감에 결국 완주를 포기했습니다.

요리 연출, 유일한 생명줄
'당신의 맛'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 푸드 스타일링과 촬영 기법입니다. 프렌치 퀴진 기법을 접목한 한식 요리들이 화면 가득 펼쳐지는 장면은 시각적 만족도가 상당했습니다. 여기서 퀴진(Cuisine)이란 특정 지역이나 국가의 요리 스타일과 조리법 체계를 의미하는 프랑스어입니다. 극 중 고민시가 선보이는 감 김밥, 떡갈비 같은 요리들이 미슐랭 레스토랑의 플레이팅처럼 정갈하게 담겨 나오는 모습은 확실히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칼질과 조리 과정을 담은 클로즈업 신은 제법 전문적이었습니다. 저 역시 과거 요리 예능에 빠져 집에서 직접 레시피를 따라 해본 경험이 있는데, 그때 느꼈던 '요리의 시각적 쾌감'을 이 드라마가 잘 살려냈다고 봅니다. 약한 영웅 클래스원을 연출했던 박다니 PD의 손길이 음식 장면만큼은 제대로 빛을 발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요리가 맛있어 보여도, 그걸 담는 그릇인 스토리가 부실하면 결국 시청자는 배를 채울 수 없습니다.
요리 드라마의 본질은 음식을 통한 인물 간 관계와 성장을 그려내는 데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파스타', '식객' 같은 선배 작품들이 기억에 남는 이유도 단순히 요리가 예뻐서가 아니라, 요리를 매개로 한 인간 드라마가 탄탄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맛'은 전자는 성공했지만 후자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배우 캐스팅, 타입 캐스팅의 함정
강하늘이라는 배우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요? 저는 솔직히 '미생'의 장그래 이후로 그의 필모그래피가 점점 코믹하고 찌질한 캐릭터로 수렴되는 게 아쉽습니다. '청년경찰', '동주', '30일', '오징어게임 2'까지 최근 작품들을 보면 진지한 로맨스보다는 개그 코드가 강한 역할이 주를 이룹니다. '당신의 맛'에서도 재벌 3세지만 어딘가 허술하고 지질한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이게 로맨스 장르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타입 캐스팅(Type Casting)이란 배우가 특정 유형의 역할에 반복적으로 캐스팅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는 배우의 연기 스펙트럼을 제한하고, 시청자에게 신선함을 주지 못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강하늘이 바로 이 함정에 빠진 케이스라고 봅니다. 로맨스의 설렘을 주려면 최소한의 진지함과 간절함이 필요한데, 그의 캐릭터는 담백함을 넘어 무미건조합니다.
고민시 배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스위트홈'에서 보여준 무게감 있는 연기와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전주 사투리를 쓰는 발랄한 셰프 역할입니다. 물론 새로운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사투리가 너무 과장되어 오히려 캐릭터 몰입을 방해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의 진지한 연기를 더 선호하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 강점이 전혀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유연석은 더욱 아쉽습니다. '응답하라 1994',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보여준 따뜻하고 깊이 있는 연기력을 모두가 아는데, 여기서는 뒤통수치는 악역으로만 소비됩니다. 악역을 맡더라도 '황정민급'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워할 수도 없는 어중간한 캐릭터입니다. 2024년 기준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배우 활용도는 작품 성공의 핵심 요소로 꼽힙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 드라마는 그 활용도 측면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반면 김신록과 유수빈은 제법 신선했습니다. 감초 역할이지만 과하지 않게 웃음을 주면서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받쳐주는 조연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결국 캐스팅의 문제가 아니라, 배우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각본 문제, 20년 전 공식의 재탕
가장 큰 문제는 각본입니다. 재벌 3세와 천재 셰프의 만남, 스승과의 갈등,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까지 모든 요소가 2000년대 초반 트렌디 드라마의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합니다. 특히 유연석이 등장하고 삿포로 에피소드가 전개되는 시점부터는 다음 장면이 훤히 예측됩니다. 저는 평소 드라마를 보면서 다음 대사나 전개를 맞추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 드라마는 8화까지 보는 내내 "아, 이제 저 사람이 나오겠네", "이제 이렇게 되겠네"가 전부 들어맞았습니다.
각본의 개연성(蓋然性, Probability)이란 사건이나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법한 그럴듯함을 의미합니다. 드라마에서 개연성이 무너지면 시청자는 몰입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맛'은 바로 이 개연성이 심각하게 부족합니다. 재벌이 작은 식당을 인수한다는 설정까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왜 하필 그 식당이어야 했는지, 두 주인공이 왜 서로에게 끌려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서사가 전혀 없습니다.
특히 삿포로 에피소드는 치명적이었습니다. 갑자기 등장한 스승과의 과거, 라면 한 그릇으로 풀리는 갈등, 너무나 뻔한 화해 구도. 이 모든 게 마치 체크리스트를 채우듯 기계적으로 진행됩니다. 로맨스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두 주인공 사이의 케미스트리인데, 이 드라마는 그걸 외부 갈등으로 희석시켜 버렸습니다.
일각에서는 "요즘 드라마는 다 이렇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같은 시기에 방영된 다른 드라마들을 보면, 클리셰를 활용하더라도 신선한 해석과 탄탄한 캐릭터 구축으로 충분히 차별화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맛'은 그런 노력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제가 8화에서 하차를 결정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더 이상 볼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의 핵심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뻔한 전개: 재벌과 셰프,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등 진부한 클리셰 반복
- 캐릭터 매력 부재: 강하늘의 지질함, 고민시의 과장된 사투리, 유연석의 어중간한 악역
- 개연성 부족: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서사 없음
저는 요리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정말 좋아합니다. 음식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추억과 감정을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맛'은 그 아름다운 그릇에 상한 재료를 담아낸 셈입니다. 요리 장면의 완성도가 높았던 만큼, 각본과 캐스팅의 실패가 더욱 아쉽게 느껴집니다. 시간 여유가 있어도 굳이 추천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파스타'를 재 시청하거나, 실제 맛집을 찾아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